세종대왕은 시각장애인이었다 충북 청원군 초정약수 축제를 보고 초등학교 이상만 되는 사람이라면 우리 나라 역대 대통령이 누군지는 잘 몰라도 미국의 대통령 몇 사람쯤은 알고 있을 것이다. 링컨 루스벨트 케네디 등. 그들은 대통령의 역할을 훌륭하게 수행했던 위인으로 기억되고 있다. 그 중에서 미국 32대 대통령 프랭클린 D. 루스벨트를 한번 보자. 그는 뉴딜 정책으로 수천만의 고용을 창출하여 대공황을 이겨내어 1940년대 경제 부흥의 기틀을 마련했다. 더구나 2차 세계대전에 참여해 승전을 주도함으로써 미국의 위상을 한껏 드높인 인물이었다. 그는 탁월한 리더십으로 실의에 빠진 국민들에게 믿음과 희망을 준 대통령으로 평가되고 있다. 그런데 루스벨트는 소아마비 장애인으로서 휠체어와 지팡이에 의지했던 사람이라는 것을 기억하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은 것 같다. 악성이라고 불리는 베토벤은 청각장애인이었다. 우주물리학자 스티븐 호킹은 루게릭병이라는 드문 병을 앓고 있는 중증의 지체장애인이다. 그리고 장애인의 대명사로 불리는 헬렌켈러가 있다. 모두가 다 외국인이다. 우리 나라 장애인중에서 이처럼 명성을 날린 사람은 거의 없다. 1996년 루스벨트 재단에서 장애인상을 제정하였는데 우리 나라가 제1회 수상자가 되는데 기여한 미국 사는 강영우 박사 쯤은 그 반열에 올려도 될까. 덕분에 우리 나라는 루스벨트 장애인상 상금으로 1997년부터 매년 4월 20일 장애인의 날에 장애극복상을 수여하고 있다. 우리 나라의 김대중 대통령도 지체장애인이었다. 우리는 소망했다. 대통령 재직 시절 장애인등록을 직접 해 보여주기를…. 그러나 대통령 임기 5년동안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이렇게 우리 나라에는 역사에 남는 장애인이 없다보니 엉뚱하게도 심청전에 나오는 심봉사가 장애인의 대표쯤으로 인식되고 있는 것 같다. 그러나 우리 나라에도 훌륭한 장애인이 있었다. 조선시대 왕으로서 가장 존경받는 인물인 세종대왕이 시각장애인이었다는 사실은 별로 알려져 있지 않았던 것이다. 장애인을 중용했던 세종대왕 세종대왕은 1397년 태종 이방원과 원경왕후 민씨의 셋째 아들로 태어났으며 이름은 도(淘)이고 자는 원정(元正)이다. 1413년 충녕대군으로 진봉되었다가 1418년 22세 나이로 조선 제 4대의 보위에 올랐다. 세종은 집현전을 두어 학문을 장려하고 많은 인재를 길렀다. 특히 우리 민족의 찬란한 문화 유산인 훈민정음을 창제하였다. 주자소를 설치하고 인쇄술을 발달시켰는데 인쇄술은 독일 구텐베르그가 1455년에 개발한 인쇄 활자보다 앞선 것이다. 측우기 해시계 등을 발명 제작함으로써 농업과 과학 기술을 발전시켰다. 군사적으로 북에는 사군육진을 설치하고 남으로 삼포를 두어 국방을 튼튼히 하였다. 의술과 음악, 방대한 편찬 사업, 법과 제도의 정비, 수많은 업적으로 나라의 기틀을 확고히 하였다. 세종은 천성이 어질고 부지런하였으며 학문을 좋아하고 취미와 재능이 여러 방면에 능통하였다. 정사를 펼침에 있어서도 백성을 사랑하고, 백성의 어려움에 관심을 가져 백성을 근본으로 한 왕도 정치를 베풀었다고 한다. 이런 성품 탓인지 맹인들을 위한 명통사에 여러 차례 쌀과 콩 등의 재물을 하사하고 점복(占卜)을 잘하는 사람에게 상을 내리는 등 특히 시각장애인에게 많은 선정을 베풀었다. 더구나 세종 18년에는 판수 지화에게 겸교 내시 작록을 내리기도 하였다. 『임금이 노한 등의 의논에 따라, 지화(池和)를 중훈 검교 첨지내시부사(中訓檢校僉知內侍府事)로 삼아 사옹원 사직의 일을 보게 하고, 이신(李信)을 조산 대부 검교 동첨지내시부사(朝散大夫檢校同僉知內侍府事)로 삼아 사옹원 부사직(司饔院副司直)의 일을 보게 하고, 곧 사모(紗帽)와 띠를 내려 주었다.』(국역세종실록 18/10/05/정묘) 검교는 종 3품으로 현대로 보자면 이사관급으로 입법부나 사법부 행정부의 국장급이다. 그런데 임금이 시각장애인에게 종 3품 벼슬을 내리자 이를 시샘하는 사람들이 파면을 상소하였으니 그 사유가 얼마 전까지만 해도 우리 사회에 만연하던 장애인에 대한 보편적 인식과 유사하다. 즉 병신하고 자리를 나란히 같이 한다는 것이 수치라는 것이다. 그러나 다행히도 세종은 그 상소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사간원 우정언(右正言) 이맹전(李孟專)이 아뢰기를, '지화와 이신에게 관작을 제수하시니, 신 등은 생각하건대, 옛날에 당나라 태종이 방현령(房玄齡)에게 이르기를, '악공(樂工)과 잡류(雜類)들은 가령 기술이 제배(輩)보다 뛰어나더라도 다만 전백(錢帛)을 특별히 내려 주어 그 재능을 상주면 될 것이며, 반드시 등급을 뛰어 넘어 관작을 주어서 조정의 현인·군자들과 함께 어깨를 나란히 하고 서며, 자리를 같이하고 먹게 하여, 사대부들의 수치가 되게 하지 말라.' 하였는데, 지금 지화(池和) 등은 비록 관작은 주었지마는 어찌 그 사무를 맡길 수가 있겠습니까. 또 사모와 품대 차림으로 조정의 길에 다니면서 조관과 나란히 서게 하니 진실로 불편한 일입니다. 원컨대 그 관직을 파면하고 다만 월료(月料)만 주어서 그 공을 상주게 하소서.'하니, 임금이 말하기를, '그대의 말이 진실로 옳다. 그러나 판수이면서도 관직을 받은 것은 지금에 시작된 것이 아니고 예로부터 있었다. 또 사옹원의 관직은 공인·상인·천례(賤隸)들도 모두 받게 되었는데, 아마 모두가 그 사무를 반드시 맡지는 못할 것이다. 지금 지화 등은 모두 국가의 점치는 일과 혼인하는 일 등에 참여하지 않은 것이 없으니, 어찌 그의 공이 없겠는가. 비록 사옹원의 관직을 제수하더라도 의리에 해로움은 없을 것이다.' 하였다.』(국역세종실록 18/10/05/정묘) 질병으로 시각장애인된 세종대왕 세종은 지화에게 종3품을 작록할 때 이미 눈병이 나 있었다. 시각장애의 원인은 유전 질병 사고 등 여러 가지 요인이 있다. 세종의 안질이 당뇨라는 사람도 있지만 아무튼 세종은 질병으로 눈이 나빠졌다. 그래서 세종실록에는 온천에 관한 내용이 자주 등장한다. 세종은 안질을 고치려고 약도 쓰고 온천행도 여러 차례 했다. 안약을 바치거나 온천을 신고하는 사람에게는 상을 내리기도 하였다. 그러나 보니 상에 욕심이 생겨 온천을 허위로 보고하는 사람도 생겼다. 그럼에도 세종의 눈병은 낫지 않아서 세자에게 전위하겠다고 했으나 신하들이 불사이군(不事二君)을 들어 만류하였다. 그러자 업무를 축소하라는 전지를 내리기도 하였다. 『임금이 승정원에 이르기를, '내가 안질(眼疾)을 얻은 지 이제 10년이나 되었으므로, 마음을 편히 하여 조섭(調攝)하고자 하니, 매월의 대조회(大朝會)와 아일(衙日)의 조참(朝參)과 야인들의 숙배(肅拜)를 제외하고는 모두 다 없애게 할 것이며, 향과 축문도 친히 전하지 말게 하라.'』(국역세종실록 23/02/20/정해) 그리고 23년 4월에는 세종이 지팡이를 짚고 다녔으며 온천행을 하고 눈이 조금 나아졌다고 한다. 『도승지 조서강(趙瑞康) 등이 문안드리니, 임금이 말하기를, '내가 두 눈이 흐릿하고 깔깔하며 아파, 봄부터는 음침하고 어두운 곳은 지팡이가 아니고는 걷기에 어려웠다. 온천에서 목욕한 뒤에도 효험을 보지 못하였더니, 어젯밤에 이르러서는 본초(本草)의 잔 주석(註釋)을 펴놓고 보았는데도 또한 볼 만하였다.'』(국역세종실록 23/04/04/경오) 세종대왕이 훈민정음을 창제한 것은 25년(1443년) 계해 12월이고 반포는 그보다 3년 뒤인 28년(1446년) 병인 9월이다. 현대에 와서 특히 인터넷 시대에 세계적으로 인정받고 있는 한글이 창제되고 반포되는 시기에도 세종은 눈병을 앓고 있어 온천을 다녔는데 민폐를 끼치지 말 것을 여러 차례 당부하였다. 『임금이 승지(承旨)들에게 이르기를, '내 두 번 온천(溫泉)에 갔었는데 민폐(民弊)가 많으므로 이제 그만두려 하였더니, 너희들이 정부 대신들로 더불어 가기를 청하고, 내 또한 다리 아픈 병이 있기에 마지못하여 가려 하니, 너희들은 나의 깊은 뜻을 알아서 폐단이 없도록 조치하라.'하였다.』(국역세종실록 25/02/28/갑인) 세종대왕이 눈병을 오래 앓았고 눈이 침침하여 어두운 곳은 지팡이 없이 다니기가 힘들었으며 눈병 치료를 위하여 온천행을 자주 한 것을 보면 그는 분명 시각장애인이었다. 현재 우리 나라 장애인복지법에 시각장애인은 0.02이하 1급에서부터 0.2이하의 6급까지로 분류하고 있는데 세종대왕은 아마도 시각장애 4~5급 정도는 되지 않았을까 싶다. 세종대왕 눈병치료한 초정약수 이같은 세종대왕의 눈병을 치료해서 유명해졌다는 온천이 있다. 지난 2일부터 5일까지 충북 청원군 내수읍 초정리에서는 [제2회 역사와 건강이 만나는 2004 세종대왕과 초정약수축제]가 열렸다. 2003년 청원군에서는 위대한 세종대왕과 신비의 샘물인 초정약수를 연계해서 관광자원으로 만들기 위한 축제를 시작했고 올해가 2회째였다. 충북 청원의 초정리 광천수는 세계 광천학회가 미국의 샤스터, 영국의 나포리나스와 함께 세계 3대 광천수(鑛泉水)로 꼽는, 600년 이상의 역사를 지닌 세계적인 광천수라고 한다(미국식품의약국 FDA 인정) 세종대왕은 눈병 치료를 위해 26년(1444)에 초수(椒水:초정약수)에 행궁을 짓고 3월 2일부터 4월 30일까지, 7월 15일부터 9월 14일까지 총 117일 동안 머물렀다는 것이다. 청원군에서는 이 축제에서 안질을 치료하기 위해 초정약수를 찾아 행차했다는 세종대왕과 소헌왕후의 어가행렬을 재현하고 세안의식을 치르는 등 다양한 문화행사를 가졌다. 그러나 세종실록에는 초수 행궁을 다녀 온 26년 이후에도 안질에 관한 내용은 더러 보이고, 여러가지 지병을 앓고 있던 세종대왕은 1450년 세종 32년 54세의 나이로 승하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