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인은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사회에 의해 만들어지는 것이다” “여성은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사회에 의해 만들어지는 것이다”라는 페미니즘 이론의 명제에다 장애인을 대입시켜 보았다. 90% 정도가 후천적 장애인이기에 '태어난다'는 부분이 어색해 보이는 것 같기도 하지만, 여성이나 장애인이나 다 같은 소수자(minority)라는 점에서 그 담긴 뜻은 잘 들어맞는 듯하다. 장애인이 아직도 사회의 주류가 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은 명백해 보인다. 그러나 우리는 거기서 그치지 말고 ‘왜 장애인이 사회의 주류가 되지 못하고 있는가’를 생각해봐야한다. 장애인 개인이 갖고 있는 생물학적 요인이 그 원인이 되는 걸까? 잠깐만 생각해보면, 그게 아니라 인간이 만들어낸 임의적 해석의 결과와 정치적 제도들이 원인임을 알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장애인은 사회에 의해 만들어지는 것’이라고 얘기할 수 있는 것이다. 장애인이 사회의 주류가 되기를 바란다면, 우리는 이미 ‘사회에 의해 만들어진’ 장애인을 다시 만들어야한다. 그래서 장애인에 대한 재해석이 필요한 것이고, 정치적 제도들이 변화되어야 하는 것이다. 그와 동시에 필요한 것이 바로 장애인당사자에 대한 ‘재사회화’일 것이다. 최근 ‘자립생활’이 장애계의 주된 관심사가 되면서 자립생활에 관심을 갖는 장애인복지관이 늘어나고 있는 듯하다. 이러한 경향은 매우 바람직하고도 자연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하지만, 장애인복지관에서 자립생활 관련 서비스를 실시하려고 하는 것은, 자립생활운동가들이 매우 우려하고 있는 부분 중의 하나이다. 소비자가 통제하는(consumer controled) 기관이 아닌 재활기관에서 자립생활 관련 서비스를 실시할 경우, 그것이 장애인을 대상화시키는 또 하나의 재활서비스로 전락해버리기 쉬운 탓이다. 또한 자립생활이라고 하는 것은 단순히 특정한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만을 의미하지 않기 때문이기도 하다. 장애인문제의 전문가는 바로 장애인당사자이며, 자립생활서비스는 자조(Self-help)에 의해 주도되어야 한다는 원칙은, 자립생활운동의 창시자 에드 로버츠(Ed Roberts)가 제시한 자립생활 5대 원칙 중의 하나이다. 또, 그 중에는 '서비스와 권익옹호(Advocacy)의 동시추구'라는 원칙도 있는데, 권익옹호라고 하는 것이 기존의 비장애인 재활전문가가 통제하는 재활기관보다는, 소비자 통제의 자립생활센터가 훨씬 더 적격이란 것은 누구나 다 쉽게 공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얼핏 보면 기존의 재활서비스와 비슷해 보이지만, 소비자 주도의 자립생활센터에서만 제대로 수행할 수 있는, 독특한 자립생활서비스들이 몇 가지 있다. 그것들은 바로, 동료상담, 자립생활프로그램과 함께, 말머리에 얘기했던 장애인당사자에 대한 ‘재사회화’ 기능인 것이다. 이러한 것들은 동료간 지원에 의해서만 가장 잘 수행될 수 있으며, 이에 적격인 전문가는 두말할 필요 없이 바로 장애인당사자다. 이것은, 자립생활을 단순히 서비스만으로 국한시킨다고 하더라도, 그 서비스를 소비자 주도의 자립생활센터에서 실시해야할 이유가 될 수 있을 것이다. 비록 장애인당사자들이 이러한 이유들을 충분히 설명하지 못한 채, 재활기관에서의 자립생활서비스를 반대한다고 하더라도, 그것을 단순한 밥그릇 싸움 정도로 평가절하하지 않기를, 많은 비장애인 재활전문가들에게 당부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