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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원봉사자] 시각장애인에 \'책 읽어주는 여자\'
이 름   좋은이
제 목   [자원봉사자] 시각장애인에 \'책 읽어주는 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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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2004-05-13
조회수   4412
첨부파일     

  시각장애인에 '책 읽어주는 여자' 

10년째 봉사 적십자 녹음실 김종옥·박윤영씨

[조선일보 정시행 기자]
당신이 불의의 사고로 실명(失明)했다고 상상해보라. 시간이 지나면 어떻게든 어둠에 적응해 가겠지만 때로는 재미있는 소설 한 권을 읽으며 시간을 보내는 것 같은 보통사람들의 평범한 일상이 미치도록 그리울 것이다. 그럴 때 누군가 곁에서 또박또박 책을 읽어준다면 ‘인간답게 산다’는 기분을 느낄지도 모른다. 

시각장애인들의 그런 행복을 위해 10년째 한푼의 보수도 받지 않고 온갖 책을 낭독해 테이프에 녹음하는 일을 조용히 해오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 대한적십자사 봉사관에서 시각장애인을 위한 녹음 봉사자 중 ‘최고참’인 김종옥 (金鐘玉·49)씨와 박윤영 (朴允映·48)씨. 이들은 “점심 굶는 학생을 위해 도시락을 싸주는 것과 비슷한 일”이라며 “앞 못 보는 분들에게 ‘정신적인 밥’을 지어드린다고 생각하며 해왔다”고 말했다. 

78년 설립된 적십자 녹음도서실에서는 18명의 봉사원들이 책을 낭독한 테이프를 제작해 전국의 시각장애인 1000여명에게 우편을 통해 무료로 대출해준다. 가장 오래 활동해온 김씨와 박씨는 주로 대하소설이나 시리즈 등 어려운 작업을 맡고 있다. 시각장애인들이 점자책은 읽기가 어렵고, 시중에서 파는 ‘오디오북’은 비용이 만만치 않다고 느껴 이들의 테이프에 점점 더 많이 의지한다고 한다.

김씨는 “처음엔 ‘나도 책좀 읽어볼까’ 하고 가볍게 시작했는데 일손 달리는 도서실 사정이 마음에 걸려 마이크를 놓지 못하고 10년을 계속했다”며 “그동안 제가 녹음한 책이 약 150권이니 테이프로 치면 1000개가 훨씬 넘을 것”이라고 말했다. 박윤영씨는 “지난 95년 조선일보에 난 모집기사를 보고 봉사관을 찾았다”는 “목소리에 자신있어 봉사를 즐기면서 해왔다”고 했다. 

이들은 일주일에 이틀씩 출근, 녹음실 안에 혼자 들어가 하루 5~6시간씩 책을 읽는다. 호흡과 발성, 띄어 읽기 등을 전문 성우에게 배운대로 하고 등장인물의 말에 감정을 넣어 연기하듯 읽다 보면 진이 다 빠져버리는 고된 노동이다. 멋모르고 자원했다가 중도 포기하는 사람이 열에 아홉이란다. 그런데도 두 주부가 자기 시간을 뭉텅 떼어내는 고된 일을 10년 동안 계속할 수 있었던 힘은 뭘까. 

“제 목소리 팬까지 생겨 ‘목소리 낭랑한 박윤영씨가 녹음한 책으로 보내달라’는 연락을 받을 땐 힘이 절로 나죠.”(박씨)

“낮은 목소리로 남자 목소리 연기까지 하다보면 여고생 때 방송반 활동하던 생각도 나요.”(김씨)

녹음하는 책은 시각장애인들의 요청을 참고해 선정한다. 베스트셀러 소설류가 많지만 흥미진진한 무협지나 추리소설도 무척 인기가 높다. 학습서를 의뢰받아 바로 테이프로 제작해 주기도 한다. 이들은 “어떤 회원들은 노골적 애정 표현이 가득한 소설도 녹음해 달라고 하는데, 우리가 읽기가 너무 민망해 포기한 적도 있다”며 호호 웃었다. 

박씨는 “교통사고로 시력을 잃은 한 10대 학생이 ‘녹음해주신 참고서와 문제집 테이프를 듣고 고입 검정고시에 합격했다’며 사탕 한 봉지를 정성스레 싸 보냈을 땐 뭐라 말할 수 없이 가슴이 뿌듯했다”고 했다. 김씨는 “이 일을 한 뒤부터는 길에서 시각장애인을 보면 나도 모르게 다가가 말을 걸게 된다”며 “처지가 다른 사람을 이해하는 법을 배웠다”고 말했다.

서울 상계동 대한적십자 봉사관은 녹음 봉사에 참여할 새로운 ‘후배’를 14일까지 모집한다. 문의(02)951-0468 

(정시행기자 polygon@chosun.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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