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조, 가자!"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창조'가 걸음을 재촉한다. "어머, 예쁘다"는 여대생들의 찬사에도 자세가 흐트러지지 않는다. 창조는 래브라도 레트리버종의 안내견으로 5년째 한 주인만을 섬기는 '줏대 있는 견공'이다. 숙명여대 교육대학원에서 음악교육을 전공하는 시각장애인 김예지(25)씨는 어디에 가든 든든하다. 2000년부터 눈을 대신해주는 ‘동생’ 창조와 24시간 함께이니까. 이들은 걸음걸이도 일반인들보다 훨씬 빠르다. 김씨 표현으론 같이 ‘날아’ 다닌단다. 특수학교 음악교사를 꿈꾸는 그녀는 연습 시간을 쪼개가며 매일 지하철을 타고 시각장애 아동들에게 피아노를 가르치러 복지관에 간다. 지금까지 받은 고마운 사랑을 사회에 환원해야겠다는 생각에서다. 밝은 성격의 그녀지만 가끔은 속상할 때가 있다. 남자친구에게 약해 보이려고 ‘으악 개! 무서워∼’를 외쳐대는 여학생들은 정말 꼴불견. ‘개털이 묻는다’며 뒷문이 열린 채 줄행랑치는 택시도 얄밉다. 피아노 연주 무대에서 드레스 자락을 이불로 착각한 창조가 드레스를 몸에 둘둘 감아 진땀을 흘렸던 기억도 잊을 수 없다. 벌써 만 6년이 된 창조와 함께할 날도 많이 남진 않았지만, 김씨는 “창조는 저랑 같이 100년 살 거예요”라며 웃는다. 안내견은 역사적 연원이 깊다. 고대 중국 동굴벽화나 중세 서양의 그림에서 시각장애인을 안내하는 개의 모습이 심심찮게 발견되고, 우리의 옛 문헌도 고려 충렬왕 시절인 1274년 서울(당시 남경)에 살던 ‘눈먼 아이’가 부모를 잃고 개 꼬리를 잡고 다녔다고 전한다. 안내견이 본격적으로 양성되기 시작한 것은 제1차 세계대전 이후부터. 우리나라에는 1972년 임안수씨가 처음으로 미국에서 셰퍼드를 들여왔지만 명맥이 끊겼고, 1990년대부터 본격적으로 양성되기 시작했다. 현재 우리나라에는 50여마리의 안내견이 활동 중이다. 시각장애인은 안내견 학교에 분양 신청을 한 다음, 선발되면 안내견을 영구 기증받을 수 있다. 아무래도 왕성한 사회적 활동을 해야 하는 사람이 선발 과정에서 유리하다. ‘개에 의존하게 된다’며 안내견을 반대하는 시각장애인도 있지만, 안내견들과 함께 더 넓은 세상에 나갈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은 사람들도 많다. 안내견이 되기 위한 과정은 무척 까다롭다. 영리하고 침착하며 시각장애인이 위험에 처했을 때 주인을 위험으로부터 구할 수 있을 정도의 힘이 있어야 한다. 덩치가 크고 사람들을 많이 마주치기 때문에 인상파는 어렵고, 사람을 너무 따라서도 안 된다. 전 세계 안내견의 95%가 캐나다산 래브라도 레트리버종이다. 생후 60일이 지나면 자질이 우수한 강아지가 선발돼 1년 동안 사육 봉사자 가정에 보내진다. 이 과정을 ‘퍼피워킹’ 이라고 하는데, 안내견 활동의 기초가 되는 공동생활, 환경적응, 기본 예절 등을 공부한다. 이후 안내견 학교로 돌아와 7∼12개월 동안 횡단보도 건너기, 위험상황에서 잘못된 주인의 명령에 따르지 않기 등 고도의 훈련을 받는다. 최종 평가에 합격한 개는 성격과 체형 등을 고려해 알맞은 주인과 짝지어지고, 대개 만 8살까지 활동한다. 요즘은 안내견에 대한 사람들의 인식도 많이 좋아졌다. 탑승을 거부당하면 주위 사람들이 나서서 “얘들이 휠체어와 다름없는데 당연히 태워야 한다”고 거들어주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아직 안내견을 ‘큰 개’로 치부하는 풍토가 남아 있다. 안내견 표지를 부착한 개들은 어떤 공공시설에도 출입할 수 있다는 사실이 잘 알려져 있지 않기 때문이다. 장애인복지법엔 보조견을 동반한 장애인의 공공장소 출입을 정당한 사유 없이 거부하면 200만원 이하의 과태료에 처한다는 규정이 있다. 안내견은 비행기 내에도 동승이 가능하다. 안내견과 함께 걷는 기분은 어떨까? 각 안내견 훈련센터에서는 사전 예약을 통해 일반인에게도 안내견을 체험해볼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10월 19일 ‘흰 지팡이의 날’이나 ‘시각장애인 돕기 사랑나눔 걷기대회’ 행사장에 들러도 안내견과 함께 걸어볼 수 있다. 이 밖에도 안내견 학교에서는 퍼피워킹 봉사자와 은퇴한 안내견을 입양할 봉사자를 기다리고 있다. 삼성화재 안내견학교 (031)320-8925 http://dog.samsung.com, 이삭 도우미 개학교 (031)356-8712 http://www.helpdog.org